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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의 살풀이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김덕명의 학춤, 이매방의 승무,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문장원의 동래입춤, 강선영의 태평무, 한분 한분의 장면 장면에 박수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이매방 명무의 춤으로 판을 요약하면, 보기엔 옥당의 춤이요, 따라 하기엔 절망의 춤이었다. 요즘 말로 ‘넘사벽’이요, 제목처럼 전무후무한 판이었다.
2005년 10월9일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 후 명무와 악사. 앞줄 왼쪽부터 장금도, 문장원, 이매방, 강선영, 김수악, 김덕명, 뒷줄 왼쪽부터 진옥섭, 김무길, 김청만, 김성아, 박종선 10원야마토게임 , 원장현, 황광엽, 한세현, 모두 전무후무한 사람들이다. 사진작가 박상윤 제공
기생, 무당, 광대, 숨은 자들의 문은 비좁았다. 그 허름한 문을 밀면 슬픔이 밀려 나왔다. 남다른 처지를 궁금히 여긴 게 아니었다. 최고의 것을 찾다 보니 남다른 예술 앞에 다다랐다. 발품과 담판으로 모신 그분들의 무 릴짱릴게임 대는 전통이라는 닫힌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무시로 초야를 떠돌았고 좁은 문을 두드렸다.
부친상 날, 오지랖 넓게 떠돈지라 각처에서 각색의 문상객이 몰렸다. 무당과 발레리나가 한 상에 마주 앉았으니, ‘만수향’과 ‘샤넬 넘버5’의 겸상이었다. 부랴부랴 상을 옮겨 다니며 말문을 틔웠다. 고향에서 온 종친들이 입 다물고 곡을 하라고 호 손오공게임 통을 쳤다. 그러나 춤꾼이 팔을 벌리고 일어섰고, 고수의 장구가 울려 나왔다. 기다린 듯이 소리꾼이 상청을 지르니 어쩔 수 없이 사회를 봐야 했다. “곡을 뽑고 자빠졌네.” 종친들이 탄식했다. 다행히 가수 장사익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종친들의 호통이 멈칫해졌다. 그리고 수군수군 “야물던 놈이 ‘딴따라의 괴수’가 되었네”라며 혀를 찼다. 이내 ‘딴따라의 괴수’ 바다이야기게임 는 문중을 떠도는 내 별명이 되었다.
슬픔의 집중력은 얼마나 될까? 순도 높은 슬픔도 채 한시간을 못 간다는 생각이다. 아비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진다고 ‘천붕’(天崩)이라 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생각이 있었다. 매 순간 일일이 슬플 수 없었고, 잔께나 들이켜 슬픔이 잠시 묽어진 탓도 있었을 게다. 문상을 온 저 사내들만 모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아 춤판을 벌이면 출연료를 적게 줘도 될 듯했다. 그렇게 부친상 중에 2002년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이 구상되었다.
또다시 길을 나섰다. 서울 안국역에서 공연 보도자료를 들고 멈추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국일보 로비에 ‘숫자와 인명은 언제나 틀린다’가 걸려 있다. 다시 한번 날짜와 제목을 살피고, 3층 편집부에 전하고 옆 건물 일간스포츠로 건너간다. 연합통신의 회전문 앞에서 잠시 멈추면 ‘건너뛰라’ 하는 악마가 나타난다. 그러니 제자리 뜀을 하다 틈이 열리면 재빨리 통과한다.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충정로의 동아일보,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면 ‘빼먹어도 돼’하는 악마가 온다. 그래서 ‘마포종점’을 부르면서 공덕동 언덕 위 한겨레신문까지 뛰어야 했다.
2004년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을 준비할 때다. 전북 군산에서 머리가 희끗한 아들이 미심쩍게 물었다. “정말 저희 어머니가 춤출 줄 압니까?”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민살풀이춤의 마지막 기능자다. 그러니 당신 어머니의 관절염은 이 나라의 우환이다’라고 신문이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 이미 보도자료를 메일로 보내는 때였다. 그래도 나는 신문사로 내달려 기자들을 만나려 두리번거렸다.
2005년 ‘전무후무’(全舞珝舞), 남무의 문장원, 김덕명. 여무의 김수악, 강선영, 장금도, 그리고 남무와 여무를 다 갖춘 이매방, 모두 여섯분을 섭외했다. 이매방 명무는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였기에 지정된 승무와 살풀이춤을 다 추기로 했다. 여기까지 반년 이상을 공을 들였고, 간신히 포스터가 나왔다. 이날부터 몸 때문에 출연을 못 하겠다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저 휴대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공연 당일, 출연자 평균나이가 80살이니, 방문객도 평균 70살이고, 60대의 제자를 동행했다. 방문증도 없이 들이닥치니 어린 진행 요원이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은 울면서 자리를 떠나 분장실마다 아수라장이었다.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분장실을 정리하니, 극장 안에는 대통령 경호실이 공연 장비를 샅샅이 수색 중이었다. 나는 최고 책임자를 찾았다. 중요한 공연이라 무대 위에도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 작동 때 켜지는 빨간불을 조준경 레이저로 오인하지 말아달라 했다. 그가 답했다. “알았어요. 그쪽 안 쏘면 되지요.”
말마따나 ‘그래도 막은 올라간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손을 잡고 춤을 약속할 때, 침 자국에 붙여 놓은 반창고들이 서로 맞물려서 떨어집니다. 마치 고해의 바다에서 돌아온 늙은 연어의 비늘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손을 잡고 춤 약속을 하는 것은, 걷는 건 두려워도 춤추는 건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면 알겠지만, 사람이 아니라 춤입니다!” 이매방의 살풀이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김덕명의 학춤, 이매방의 승무,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문장원의 동래입춤, 강선영의 태평무, 한분 한분의 장면 장면에 박수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이매방 명무의 춤으로 판을 요약하면, 보기엔 옥당의 춤이요, 따라 하기엔 절망의 춤이었다. 요즘 말로 ‘넘사벽’이요, 제목처럼 전무후무한 판이었다.
2005년 10월8일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 전, 객석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환호하는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대통령 왼쪽은 정동채 전 문화체육부 장관, 뒤쪽은 김경수 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영부인 오른쪽 둘째는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공연 후, 감격한 대통령은 국무(國舞)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그냥 말만 하면 되는 백지수표였다. 그런데 한분이 “이런 ○할! 한 종목에 인간문화재가 어떻게 둘이 될 수 있어요?” 그러자 같은 이유로 제자와 골이 깊었던 분이 “요즘 ×같이, 개나 소나 인간문화재야!” 거침없는 추임새를 넣었다. 순간 모두가 얼어 붙어버렸다. 너무 급히 언 살얼음판에서, 대통령은 “혹시 그것은 경쟁력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요?” 되물었다. 아! 법률가다운 번득이는 답이었다. 더 불거지기 전에 나서, “각하! 평생 한 우물을 판 분들입니다. 너무 깊이 파 하늘이 좁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박장대소로 ‘국무’회의가 정리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내외와 국무들이 전무후무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때 국무들이 나를 잊어버렸다. 그러자 대통령이 “연출자님, 제가 사진 같이 찍어드리면 도움이 됩니까?” 역시 정세와 판을 빠삭하게 읽는 분이었다. “예!” 하며 공연을 주최한 서울국제무용축제 이종호 위원장과 함께 나가 사진을 찍었다.
둘째 날 마지막 공연, 군산의 장금도 명무의 아들 이영철씨가 꽃다발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월남전에 나가 고엽제로 2급 상이용사가 되었기에 다리를 절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부인과 두 아들, 며느리와 손녀, 가족 모두가 지켜봤다. 기생이었던 어머니와 춤 때문에 다투었던 어린 아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신문의 공연 기사가 50년 만의 화해를 만들어 냈다.
‘전무후무’(全舞珝舞) 무대에 군산 장금도 명무의 아들 이영철씨가 꽃다발을 들고 올랐다. 기생이었던 어머니와 춤 때문에 다투었던 어린 아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신문의 공연기사가 50년 만의 화해를 만들어 냈다. 사진작가 박상윤 제공
공연이 정리된 후, 고향에 내려와 할머니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칼럼 ‘스크린 속 내 연인, 이소룡’을 썼다. 그 후 그간의 보도자료를 다시 고쳐 숨은 명인들의 삶과 예술을 썼다. ‘당산대형’을 보러 가는 발걸음을 서문으로 하고,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하여 2007년 ‘노름마치’라는 책을 냈다. 노름마치란 ‘놀음을 마치게 하는 사람’으로, 고수 중의 고수를 일컬은 남사당패의 은어였다.
초야의 명인들과 담판을 할 때, 내 밑천은 할머니의 기다림과 슬픔이었다. 징용 간 할아버지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도 일생을 기다린 할머니. 벗이라고는 돌돌 말아 피우는 ‘봉초’라는 담배 하나였다. 1974년 ‘당산대형’의 입장료 40원은 할머니 담배 살 돈이었다. 그래서 ‘노름마치’를 재출간할 때 책의 날개에 저자 소개를 늘려 ‘21살 청상과부였던 나의 할머니 양춘댁에게 이 글을 바친다. 책에 적은 글을 온통 바치고, 마지막 마침표 하나도 바둑알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아 바친다’라고 새겼다.
‘신문은 역사의 초안이다.’ 영화 ‘더 포스트’에서 캐서린(메릴 스트리프)이 남편 필립 그레이엄의 말을 편집장 벤(톰 행크스)에게 전하는 명대사다. 20년 전 쓴 칼럼은 지금쯤 역사가 되었을까. 아마도 개인의 신변잡기니 역사가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기억의 서랍이 열려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를 하니, 내게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역사와 진배없다. 올 추석, 할머니의 담뱃값 40원을 훔쳐 ‘당산대형’을 본 지 51년째고, ‘전무후무’ 공연 20년째다. 우연히 고향에서, 먼 훗날 열어볼 역사의 초안으로, 20년 전 옛일을 더듬어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적어둔다.
진옥섭
2005년 10월9일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 후 명무와 악사. 앞줄 왼쪽부터 장금도, 문장원, 이매방, 강선영, 김수악, 김덕명, 뒷줄 왼쪽부터 진옥섭, 김무길, 김청만, 김성아, 박종선 10원야마토게임 , 원장현, 황광엽, 한세현, 모두 전무후무한 사람들이다. 사진작가 박상윤 제공
기생, 무당, 광대, 숨은 자들의 문은 비좁았다. 그 허름한 문을 밀면 슬픔이 밀려 나왔다. 남다른 처지를 궁금히 여긴 게 아니었다. 최고의 것을 찾다 보니 남다른 예술 앞에 다다랐다. 발품과 담판으로 모신 그분들의 무 릴짱릴게임 대는 전통이라는 닫힌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무시로 초야를 떠돌았고 좁은 문을 두드렸다.
부친상 날, 오지랖 넓게 떠돈지라 각처에서 각색의 문상객이 몰렸다. 무당과 발레리나가 한 상에 마주 앉았으니, ‘만수향’과 ‘샤넬 넘버5’의 겸상이었다. 부랴부랴 상을 옮겨 다니며 말문을 틔웠다. 고향에서 온 종친들이 입 다물고 곡을 하라고 호 손오공게임 통을 쳤다. 그러나 춤꾼이 팔을 벌리고 일어섰고, 고수의 장구가 울려 나왔다. 기다린 듯이 소리꾼이 상청을 지르니 어쩔 수 없이 사회를 봐야 했다. “곡을 뽑고 자빠졌네.” 종친들이 탄식했다. 다행히 가수 장사익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종친들의 호통이 멈칫해졌다. 그리고 수군수군 “야물던 놈이 ‘딴따라의 괴수’가 되었네”라며 혀를 찼다. 이내 ‘딴따라의 괴수’ 바다이야기게임 는 문중을 떠도는 내 별명이 되었다.
슬픔의 집중력은 얼마나 될까? 순도 높은 슬픔도 채 한시간을 못 간다는 생각이다. 아비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진다고 ‘천붕’(天崩)이라 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생각이 있었다. 매 순간 일일이 슬플 수 없었고, 잔께나 들이켜 슬픔이 잠시 묽어진 탓도 있었을 게다. 문상을 온 저 사내들만 모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아 춤판을 벌이면 출연료를 적게 줘도 될 듯했다. 그렇게 부친상 중에 2002년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이 구상되었다.
또다시 길을 나섰다. 서울 안국역에서 공연 보도자료를 들고 멈추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국일보 로비에 ‘숫자와 인명은 언제나 틀린다’가 걸려 있다. 다시 한번 날짜와 제목을 살피고, 3층 편집부에 전하고 옆 건물 일간스포츠로 건너간다. 연합통신의 회전문 앞에서 잠시 멈추면 ‘건너뛰라’ 하는 악마가 나타난다. 그러니 제자리 뜀을 하다 틈이 열리면 재빨리 통과한다.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충정로의 동아일보,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면 ‘빼먹어도 돼’하는 악마가 온다. 그래서 ‘마포종점’을 부르면서 공덕동 언덕 위 한겨레신문까지 뛰어야 했다.
2004년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을 준비할 때다. 전북 군산에서 머리가 희끗한 아들이 미심쩍게 물었다. “정말 저희 어머니가 춤출 줄 압니까?”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민살풀이춤의 마지막 기능자다. 그러니 당신 어머니의 관절염은 이 나라의 우환이다’라고 신문이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 이미 보도자료를 메일로 보내는 때였다. 그래도 나는 신문사로 내달려 기자들을 만나려 두리번거렸다.
2005년 ‘전무후무’(全舞珝舞), 남무의 문장원, 김덕명. 여무의 김수악, 강선영, 장금도, 그리고 남무와 여무를 다 갖춘 이매방, 모두 여섯분을 섭외했다. 이매방 명무는 두 종목의 인간문화재였기에 지정된 승무와 살풀이춤을 다 추기로 했다. 여기까지 반년 이상을 공을 들였고, 간신히 포스터가 나왔다. 이날부터 몸 때문에 출연을 못 하겠다는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저 휴대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공연 당일, 출연자 평균나이가 80살이니, 방문객도 평균 70살이고, 60대의 제자를 동행했다. 방문증도 없이 들이닥치니 어린 진행 요원이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은 울면서 자리를 떠나 분장실마다 아수라장이었다.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분장실을 정리하니, 극장 안에는 대통령 경호실이 공연 장비를 샅샅이 수색 중이었다. 나는 최고 책임자를 찾았다. 중요한 공연이라 무대 위에도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 작동 때 켜지는 빨간불을 조준경 레이저로 오인하지 말아달라 했다. 그가 답했다. “알았어요. 그쪽 안 쏘면 되지요.”
말마따나 ‘그래도 막은 올라간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손을 잡고 춤을 약속할 때, 침 자국에 붙여 놓은 반창고들이 서로 맞물려서 떨어집니다. 마치 고해의 바다에서 돌아온 늙은 연어의 비늘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손을 잡고 춤 약속을 하는 것은, 걷는 건 두려워도 춤추는 건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면 알겠지만, 사람이 아니라 춤입니다!” 이매방의 살풀이춤,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김덕명의 학춤, 이매방의 승무,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문장원의 동래입춤, 강선영의 태평무, 한분 한분의 장면 장면에 박수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이매방 명무의 춤으로 판을 요약하면, 보기엔 옥당의 춤이요, 따라 하기엔 절망의 춤이었다. 요즘 말로 ‘넘사벽’이요, 제목처럼 전무후무한 판이었다.
2005년 10월8일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 전, 객석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환호하는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대통령 왼쪽은 정동채 전 문화체육부 장관, 뒤쪽은 김경수 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영부인 오른쪽 둘째는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공연 후, 감격한 대통령은 국무(國舞)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그냥 말만 하면 되는 백지수표였다. 그런데 한분이 “이런 ○할! 한 종목에 인간문화재가 어떻게 둘이 될 수 있어요?” 그러자 같은 이유로 제자와 골이 깊었던 분이 “요즘 ×같이, 개나 소나 인간문화재야!” 거침없는 추임새를 넣었다. 순간 모두가 얼어 붙어버렸다. 너무 급히 언 살얼음판에서, 대통령은 “혹시 그것은 경쟁력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요?” 되물었다. 아! 법률가다운 번득이는 답이었다. 더 불거지기 전에 나서, “각하! 평생 한 우물을 판 분들입니다. 너무 깊이 파 하늘이 좁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박장대소로 ‘국무’회의가 정리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내외와 국무들이 전무후무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때 국무들이 나를 잊어버렸다. 그러자 대통령이 “연출자님, 제가 사진 같이 찍어드리면 도움이 됩니까?” 역시 정세와 판을 빠삭하게 읽는 분이었다. “예!” 하며 공연을 주최한 서울국제무용축제 이종호 위원장과 함께 나가 사진을 찍었다.
둘째 날 마지막 공연, 군산의 장금도 명무의 아들 이영철씨가 꽃다발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월남전에 나가 고엽제로 2급 상이용사가 되었기에 다리를 절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부인과 두 아들, 며느리와 손녀, 가족 모두가 지켜봤다. 기생이었던 어머니와 춤 때문에 다투었던 어린 아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신문의 공연 기사가 50년 만의 화해를 만들어 냈다.
‘전무후무’(全舞珝舞) 무대에 군산 장금도 명무의 아들 이영철씨가 꽃다발을 들고 올랐다. 기생이었던 어머니와 춤 때문에 다투었던 어린 아들은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신문의 공연기사가 50년 만의 화해를 만들어 냈다. 사진작가 박상윤 제공
공연이 정리된 후, 고향에 내려와 할머니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칼럼 ‘스크린 속 내 연인, 이소룡’을 썼다. 그 후 그간의 보도자료를 다시 고쳐 숨은 명인들의 삶과 예술을 썼다. ‘당산대형’을 보러 가는 발걸음을 서문으로 하고,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에필로그로 하여 2007년 ‘노름마치’라는 책을 냈다. 노름마치란 ‘놀음을 마치게 하는 사람’으로, 고수 중의 고수를 일컬은 남사당패의 은어였다.
초야의 명인들과 담판을 할 때, 내 밑천은 할머니의 기다림과 슬픔이었다. 징용 간 할아버지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도 일생을 기다린 할머니. 벗이라고는 돌돌 말아 피우는 ‘봉초’라는 담배 하나였다. 1974년 ‘당산대형’의 입장료 40원은 할머니 담배 살 돈이었다. 그래서 ‘노름마치’를 재출간할 때 책의 날개에 저자 소개를 늘려 ‘21살 청상과부였던 나의 할머니 양춘댁에게 이 글을 바친다. 책에 적은 글을 온통 바치고, 마지막 마침표 하나도 바둑알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아 바친다’라고 새겼다.
‘신문은 역사의 초안이다.’ 영화 ‘더 포스트’에서 캐서린(메릴 스트리프)이 남편 필립 그레이엄의 말을 편집장 벤(톰 행크스)에게 전하는 명대사다. 20년 전 쓴 칼럼은 지금쯤 역사가 되었을까. 아마도 개인의 신변잡기니 역사가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기억의 서랍이 열려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를 하니, 내게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역사와 진배없다. 올 추석, 할머니의 담뱃값 40원을 훔쳐 ‘당산대형’을 본 지 51년째고, ‘전무후무’ 공연 20년째다. 우연히 고향에서, 먼 훗날 열어볼 역사의 초안으로, 20년 전 옛일을 더듬어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적어둔다.
진옥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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