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케이티 존슨 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코러스 아파트(Chorus Apartments)’ 집 내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는 발달장애인 20가구와 비장애인 51가구가 함께 거주한다. 푸르메재단 제공 



"안녕하세요. 제 집에 오신 걸 환영해요."

케이티 존슨 씨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에 있는 39㎡(약 12평)짜리 이 집은 침실과 거실, 주방, 욕실이 갖춰져 있어 한국의 분리형 원룸을 연상케 했다. 거실 벽에는 친척들과 찍은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거실 한편에는 트로피와 함께 존슨 씨의 운동 사진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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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속한 야구팀과 찍은 사진이에요. 저는 야구, 볼링, 수영, 킥복싱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해요. 이 집은 가구와 작은 소품까지 제가 직접 골라서 꾸몄어요. 거실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나만의 공간이 있어 정말 좋아요."
발달장애가 있는 존슨 씨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2016년 독립해 이 집으로 왔다. 캐나다 씽크풀
비영리단체 '유니티(Uniti)'가 2016년 건립한 '코러스 아파트(Chorus Apartments)'다. 총 71가구가 사는 임대주택으로, 발달장애인 20가구와 저소득 및 중간소득 가구, 노인, 필수 노동자, 학생 등 비장애인 51가구가 거주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구는 특별히 분리되지 않으며 모든 입주자가 이용 가능한 공동 편의 공간도 마련돼 있다.릴게임신천지




비영리단체 ‘유니티(Uniti)’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건립한 코러스 아파트 외관. 푸르메재단 제공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아파트코러스 아파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화일약품 주식
2003년이다. 유니티가 개최한 한 세미나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전통적인 그룹홈(소수 장애인이 사회복지기관 직원과 함께 거주하는 시설)과는 다른 반독립적인 아파트 생활을 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이후 유니티는 후속 논의를 거쳐 아파트 건립을 위한 토지를 매입했다. 2015년 코러스 아파트 건립 공사를 시작해 2016년 완공하고 같은 해 신라에스지 주식
첫 입주자를 맞았다. 건립비는 총 1535만 캐나다달러(약 154억 원). 토지와 현금을 포함해 유니티의 자산 435만 캐나다달러(약 44억 원)가 투입됐고, 950만 캐나다달러(약 95억 원)는 부동산담보대출로 충당했다.

눈여겨볼 점은 유니티가 코러스 아파트 착공 전인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발달장애인 및 그 가족들과 꾸준히 소통했다는 것이다. 유니티는 이 과정에서 독립에 관심 있는 발달장애인 140여 명을 만났다. 더그 테넌트 유니티 최고경영자(CEO)는 "(발달장애인 및 그 가족과의) 깊은 상담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 개개인의 삶을 면밀히 살폈다"며 "상담을 바탕으로 적합한 입주자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발달장애인 입주자의 독립 준비 과정을 도왔다. 테넌트 CEO는 "입주자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에 관해 장애 당사자 및 가족과 자주 대화하고, 가족들에게는 장애 당사자의 독립성을 평가하게 했다"고 밝혔다. 저녁 시간에 발달장애인 혼자만 집에 있게 해보거나 집안일을 시키는 등 여러 방식으로 장애인이 독립생활을 할 준비가 됐는지 확인한 것이다. 



발달장애인 크리스타 밀른 씨(오른쪽)가 유니티의 자기 옹호 그룹 일원으로서 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유니티를 소개하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장애인이 원하는 만큼만 지원코러스 아파트에 사는 발달장애인은 하루 평균 2시간가량 사회복지기관 직원이나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 요리, 쇼핑 같은 일상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다. 활동 지원에 필요한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 이러한 지원도 장애인 본인이 원치 않으면 언제든 거부할 수 있다. 입주자들은 정부 지원금을 활용해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지역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대규모 장애인 거주 시설이나 그룹홈에 사는 장애인들이 기관이 짜놓은 프로그램에 맞춰 다 같이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존슨 씨가 즐기는 다양한 운동 역시 본인이 선택한 것들이다.

덕분에 코러스 아파트 입주민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유니티 측 설명에 따르면 '삶의 질' 조사 결과 코러스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의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8.1점으로, BC주에 사는 전체 장애인의 평균 점수(7.4점)나 비장애인 평균 점수(7.9점)보다 높았다. 점수가 높을수록 삶의 질이 높다는 의미다.
코러스 아파트에 사는 장애인들은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요리, 장보기, 빨래, 청구서 처리 같은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됐고, 구직에도 더 적극 나서고 있다. 코러스 아파트 관리 직원인 재스퍼 씨는 "발달장애인이 직접 임대차계약을 맺고, 또 직접 일해서 얻은 소득과 정부 지원금으로 임차료와 관리비를 낸다"며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입주자들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요.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여기지도 않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밤중에 화재 경보기가 울렸는데 장애인 입주자가 방마다 다니며 대피 안내를 하기도 했어요. 입주자들은 단순히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삶의 태도까지 갖추게 된 거죠."
코러스 아파트는 캐나다 내에서도 모범적인 주거 지원 모델로 꼽힌다. 유니티는 코러스 아파트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하모니 아파트(Harmony Apartments)'를 착공했다. 하모니 아파트는 총 91가구가 들어서는 임대아파트로 2028년 완공 예정이다.
유니티가 코러스 아파트와 하모니 아파트를 건립하는 데는 난관이 많았다. 코러스 아파트 관련 논의를 시작하고 10년이 지나서야 건축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코러스 아파트와 하모니 아파트 건설 계획이 시 의회에서 부결된 적도 있었다.
힘든 사업을 끝내 성공시킬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바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였다. 유니티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자기 옹호(당사자가 자신의 권익과 이해관계를 스스로 주장하는 것) 그룹을 운영한다. 이들은 다양한 지역 행사와 정치 모임에 참석해 장애인 권리를 보호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시 의회서 아파트 건설 계획 무산되기도푸르메재단 조사단에게 유니티를 소개한 사람도 자기 옹호 그룹에 소속된 크리스타 밀른 씨였다. 테넌트 CEO는 "코러스 아파트와 하모니 아파트 건설 계획이 시 의회에서 부결됐을 때 자기 옹호 그룹 회원들이 시장과 시의원을 만나 자신들에게 이 집이 왜 필요한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직접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코러스 아파트는 우리로 하여금 '집'과 '자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집은 외형적으로 좋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집에 살게 될 당사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직접 소리 내어 말할 때 그 집은 비로소 '보금자리'가 된다. '자립'이란 단순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의 지원(just enough support)'을 스스로 택하고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다.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과 주거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한국형 코러스 아파트, LH '다다름하우스' 카페 등 공용 공간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자연스레 어울려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다다름하우스’. 발달장애인과 자립 준비 청년 등이 거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LH 캡처



한국에서도 코러스 아파트와 비슷한 주거 지원 사업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다다름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지하 2층·지상 5층짜리 다세대주택인 다다름하우스는 2022년 준공돼 입주민을 맞았다. 6월 기준 발달장애인 19가구와 자립 준비 청년 5가구를 비롯해 총 53가구가 살고 있다. 카페, 공유세탁소, 라운지, 창작공간 등 다양한 공용 공간을 갖춰 입주민이 각자 독립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다양한 집단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6월에는 경기 김포시 양촌읍에 소셜믹스(Social Mix: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 특화형 임대주택 '여기가(家)'가 준공됐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 건립한 곳으로, 장애인 12가구, 미·비혼 아동 양육 8가구, 1인 8가구를 더해 총 28가구가 거주한다. 여기가는 나이, 성별, 언어, 장애 유무는 물론 개인 능력이나 개성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구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닥 높낮이 차이를 없앴고, 출입문과 각 방문은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만들었다. 화장실 또한 전동휠체어가 회전하거나 샤워용 침대를 둘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여기가 면적과 구조는 장애인 거주 공간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오선영 푸르메재단 마케팅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