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25' 한국관 모습.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지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웨스트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025'가 인공지능(AI)과 우주기술이 결합된 산업의 미래를 제시했다. 북미 최대 규모 스타트업 전시회인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 130개국에서 1만명이 넘는 창업자, 투자자, 기술 리더가 참석했다. 자율주행, AI, 로보틱스, 핀테크, 우주산업 등 첨단 분야가 총출동한 가운데, 올해는 특히 '우주'가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 배틀필드 200'에 선정된 3곳의 우주 스타트업 애스트럼 드라이브, 차터 스페이스, 엔독스는 각기 다른 접근법으로 우주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제시했다. 이들은 로켓 중심의 전통적 우주개발을 넘어, 에너지·AI·금융을 융합한 '지능형 우주 인프라스트럭처 모델'을 내놓으며 투자자와 업계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애스트럼 드라이브는 연료가 필요 없는 전기 기반 우주 추진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위성이나 탐사선의 전력을 이용해 지속적인 추력을 발생시키는 '무추진제 시스템'이 핵심이다. 이 회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레오 질라르드가 1930년대 제시한 '열 구동 원리'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해 적용했다. 실험에서는 전기만으로 수 밀리뉴턴(mN) 단위의 지속적 추력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실제 환경 검증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실험실 연구를 넘어 우주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연료 비축 없이 위성의 자세 제어, 궤도 유지, 수명 연장이 가능해진다. 발사체 무게를 대폭 줄이고 비용 구조를 혁신할 수 있어, 향후 위성 군집체제나 장기 심우주 탐사 미션의 패러다임을 바꿀 잠재력을 지닌다. 애스트럼 드라이브는 현재 스페이스오션과 협력해 궤도 실증과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캘리포니아 엘세군도에 본사를 둔 차터 스페이스는 우주 프로젝트 전체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이다. 위성·우주선 설계, 제작, 시험, 운용, 보험 과정을 한 시스템 에서 통합 관리하는 '유빅' 플랫폼을 개발했다.
특히 복잡한 위성 보험 절차를 자동화한 '우주 자산 보험' 솔루션으로 주목받았다. 차터 스페이스는 글로벌 보험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실시간으로 규제·라이선스 승인과 보험 청구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미군, 로켓랩 출신 엔지니어들이 창업한 이 회사는 우주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엔지니어링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 '우주 핀테크(fintech for space)'라는 신시장 개념을 만들었다.
매사추세츠주에 본사를 둔 엔독스는 국방·우주·중공업용 AI 로보틱스 시스템을 개발하는 차세대 기술기업이다. '피지컬 AI(Physical AI)'를 표방하는 이 기업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자율형 로봇 시스템을 만든다. 엔독스의 기술은 센서 융합, 모듈형 로봇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국방부, 항공우주기업, 물류·중공업 현장에서 실시간 데이터 기반의 자동화와 자율운용을 구현한다. 현재 미 국방부 테스트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며 스타버스트벤처스와 그리피스연구소 등으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디스럽트의 스페이스 세션은 단순한 기술 전시가 아닌 민간 주도의 우주경제 전환점이었다. 스텔라 벤처스의 셀레스트 포드는 "이제 우주는 더 이상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AI와 자본이 새로운 궤도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는 NASA, 더 에어로스페이스 코퍼레이션,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 등 민간 우주기업이 대거 참가해, 궤도상 컴퓨팅과 자율 제조, 위성 네트워크 등 미래 기술의 로드맵을 공유했다.
한편 한국 스타트업들도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한국관 참가 기업 13곳 중 에어빌리티, 비주얼신, 제제듀 등 3개사가 동시에 '스타트업 배틀필드 200'에 선정됐다. 한 국가관에서 세 기업이 동시에 본선에 진출한 것은 테크크런치 역사상 처음이다. 에어빌리티는 도심항공교통(UAM) 분야의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기업으로, 자체 추진 시스템과 경량화 구조 기술을 선보였다. 비주얼신은 XR(확장현실) 기술로 산업훈련과 콘텐츠 제작을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제제듀는 AI 기반 학습 플랫폼으로 학습자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세 기업 모두 전 세계 1500개 지원 기업 중 상위 200개에 들었다. KOTRA는 "2018년 첫 참가 이후 7회째를 맞은 올해,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번 성과는 단순한 전시 참여를 넘어, 한국 기술이 세계 혁신 생태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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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