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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짐짓 를 올 주려고[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9월19일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2030 청년 소통·공감 토크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가까워야 될 청년 세대들이, 특히 남녀가 편을 지어 다투는… 괜히 여자가 남자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거 이해하는데, 그럴 수 있잖아요, 그죠? 여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미워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의날을 디딤돌대출 이자 하루 앞둔 지난 19일, 2030 청년 소통·공감 콘서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이 눈치 보듯 좌우를 살피며 하는 이야기에, 좌중에서는 웃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과연 웃을 일일까. 관련 영상과 기사가 나가고, 많은 여성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이 대통령이 가진 젠더 인식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의문 부호가 따라 롯데캐피탈가조회 붙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면서 “여전히 여성이 차별받는 게 분명하지만, 특정 영역에서는 오히려 남성을 보호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 말로 미루어 짐작건대 '성평등가족부'라는 이름에 담긴 진의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차별을 겪는다'일 것이다. '여자 지우기'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남 고용주가 직원에게 보내는 해고통보 메일을 의미하는 용어 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을 넘어 성평등을 추구하겠다는 의미의 성평등가족부로 이해하고 싶었다. 윤석열 정권 내내 폐지 위기에 시달리던 성평등 주무부처를 '확대'하겠다는 말에서 오는 반가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 콘서트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그의 문제적 인식을 강하게 느낀다.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일반대출생활비 이해가 된다”는 식의 단선적인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가 남자를 '괜히 미워한다'는 말이 가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이 대통령은 스토킹 살인에 대한 재발 방지를 지시하면서, 남자가 여자를 죽이는 근원적인 구조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괜히 미워'한다는데, 아시아나항공 청년 여성들에겐 젠더 기반 폭력과 안티페미니즘이라는 '죽고사니즘'과도 결부되는 존재가 동세대 남성이다. 스토킹·교제 살인의 밑바탕에 깔린 “나를 거절한 너는 죽어야 한다”는 여성혐오적 가치관에 더해,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물이 담고 있는 여성 인격 살인의 함의까지… 일련의 사태들에서 여성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미움'이라거나 '두려움' 같은 단어 하나로만 정리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사 이후 쏟아져 나온 언론 보도들에서는 각 뉴스룸의 그릇된 젠더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는 '발생 사건'이기에 각 언론사에서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기사 제목은 이 대통령이 청년세대 전체를 '피해계층'이라 칭하며 기성세대로서 사과했다는 것이었다. 본문에는 '이 대통령은'으로 시작해 '~라고 말했다'로 끝맺는 문장들이 쭉 나열됐다. 기성 세대의 한 축이자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청년세대의 고통에 사과했다는 것은 중요한 팩트다. 그러나 '여적여'나 '여자가 남자를 괜히 미워한다'는 식의 발언에 담긴 그릇된 젠더관은 후술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 기사들에서는 '여적여' 발언 등에 담긴 문제적 인식을 간파하지 못했거나 애써 무시하듯, 파편적으로 이어 쓰는 보도가 이어졌다.
제대로 된 '야마'(기사의 핵심 줄거리)를 가장 먼저 짚은 곳은 서울경제신문이었다. 기사 <李 “여자가 여자 미워하는 건 이해돼”… 젠더갈등 언급 중 돌발 발언>는 첫 문단에서부터 이 대통령이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는 건 이해되지만 여자가 남자를 미워하면 안 된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며 “자칫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말”이라고 적었다. 이어 다른 언론사에서도 '젠더 갈등' 또는 '성별 갈등'이라는 말을 붙여 이 대통령의 '여적여' 발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대통령이 청년들의 현실을 남자와 여자가 편을 나누어 다투는 '갈등'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언론의 '젠더갈등'이라는 호명은 적확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젠더갈등'이 아니라는 얘기를, 스트레이트 기사에서건 이후의 해설 기사나 칼럼에서건 부연을 해야 했다. 프레시안은 이날 저녁에 나온 해설 기사 <성차별을 '갈등'으로 본 李대통령…“남녀가 편을 지어 다툰다”>를 통해 이 대통령이 가진 젠더관이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짚었다. 경향신문은 22일자 <이재명 대통령의 젠더 인식 '이의 있습니다' [김민아 칼럼]>에서 이 대통령 발언을 세 가지 층위로 비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들은 발언이라며 “취업하기까지는 여성이 좀 유리하고 남성이 차별받는 것 같다. (남성은) 군대도 가야하는데 가산점도 안 주고…”라고 말한 데 대해 “군 가산점제는 성별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평등권의 문제”라고도 반박했다.
뉴스룸의 젠더 감수성에 따라, 스트 기사의 방향도 후속 보도에도 어떤 차이가 나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며칠이었다. 기존에도 젠더 보도에 남다른 열심을 쏟았던 언론사들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며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