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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에 전시된 '알라만다의 그늘'. [뉴시스]


"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그러나/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시 '천경자를 노래함'에서 화가 천경자(1924~2015)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대담한 의상을 걸친 천경자를 보면 "원색을 느낀다"며 "그의카지노릴게임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으로) 아찔하게 감각적"이라고 했다. 박경리의 눈에 천경자는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들쑥날쑥한", 말하자면 '튀는' 자유주의자였다. 오랜 세월 그의 작품이 폭넓게 사랑 받아온 이유도 화폭에서 전해지는 그 '자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서울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 기획전 '내 슬손오공릴게임예시
픈 전설의 101페이지'가 지난 24일 개막해 내년 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1940년대 후반 초기작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천경자의 화업 중 가장 주요한 장르인 채색화 80여 점과 150여 점의 삽화와 표지화, 사진 등 아카이브 자료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2006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작가의 생전 마지막 개인전 '내 생에 아름다운 82페이지' 이점상한가
후 열린 전시 중 최대 규모다.
전시에 따르면, 천경자는 채색화를 통해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고 시대를 개척한 예술가였다. 1941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를 나온 뒤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과를 졸업한 그는 44년 모교 미술 교사로 부임해 창작을 이어가며 조선미전 입선과 개인전을 통해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54년솔브레인이엔지 주식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됐으며, 46세 때부터 25년에 걸쳐 13회에 걸쳐 세계 여행을 떠난 '자유인'이었다. 그는 또 1955년 펴낸『여인 소묘』를 시작으로 수필집과 세계풍물기행기 등 20권 가량의 책을 출간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1998년 자신의 작품 90여 점과 저작권 일체를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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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천경자의 대표작이자 서울미술관 소장품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74년 홍익대 교수직을 떠난 뒤 만 49세가 되던 해 1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평화로운 아프리카 초원에 나체의 여인이 코끼리 위에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2018년 경매에서 국내 여성 작가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20억원에 낙찰된 채색화 '초원Ⅱ'(1978)도 전시에 나왔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 [뉴시스]


초기 화풍의 특징으로 푸른 색감이 두드러지는 '언젠가 그날'(1969), '춘우(春雨)' (1966)도 나란히 걸렸다. 특히 '춘우'는 작가가 자신의 고향 고흥을 그린 풍경화로 환상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1955년 제7회 대한 미협 전람회에서 대통령 상을 받은 '정(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맑게 그려진 붉은 색조 화면에 해바라기 꽃을 배경으로 검은 고양이를 안고 앉아 있는 빨강 치마의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 강렬하다. 작가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왜 그런지 그릴 때 자꾸 눈물이 나오더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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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아닌 '여성 초상화'





천경자의 여성 초상화 '고(孤)' 1974, 종이에 채색,38.5x23.3 cm. [사진 서울미술관]





천경자, 정(靜), 1955, 종이에 채색, 162.6x85cm, 부국문화재단소장. [사진 서울미술관]



천경자를 대표하는 여성 초상화 작품도 다수 나왔다. 천경자의 여성 초상화는 흔히 '미인도'라 불렸으나, 이번 전시에선 '미인도'라는 말 대신 '여성 초상화'라는 표현을 내세웠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쓴 글에서 "미인도는 남성의 관점에서 '대상'으로서 여성을 그린 것이라면, 천경자의 여성 초상화는 대부분 주변에 실재하는 모델을 그린 것으로, 자기감정에 충실한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여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천경자 작품 중 하나로 가장 화려하고 쓸쓸해 보이는 작품 중 하나인 '고(孤)'(1974), 천경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노천명(1912~1957)을 그린 '노천명'(1973)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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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글로 입체적 조명
1년 넘게 준비된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갤러리현대 등 총 18개 기관과의 협조로 이뤄졌다. 더프리마뮤지엄, 한솔문화재단, 가나문화재단, 부국문화재단도 힘을 보탰다. 전시 공간마다 천경자와 인연이 있거나 해당 주제를 대표할 수 있는 외부 인사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쓴 글을 곁들여 작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노력도 돋보인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 등 7인의 글이 '스토리를 읽는' 전시의 맛까지 더했다.

그러나 '천경자' 이름 뒤에 항상 따라다니는 문제의 사건이 있다. 1991년 일어난 이른바' 미인도 위작 사건'이다. 천경자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신의 작품이라며 전시한 '미인도'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이게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은 23일 이 사건을 거론하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전시를 준비했다"며 "우리가 더는 '위작 논란' '한을 그리는 여자'라는 테두리 안에 그를 가둬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직접 와서 눈앞의 작품을 통해 천경자의 일대기를 만나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술관은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며, 3~9일 이번 추석 연휴 기간 휴관일 없이 정상 개관한다. 전시와 연계해 11월 중순 천경자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 시내를 둘러보는 '길 위의 미술관' 투어 프로그램을 열며, 12월 6~7일 미술관에서 천경자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 '슬픈 전설의 화가'도 공연한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