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료원 보호자 없는 병실에 함께 입원한 아들 박효성(가명)씨와 어머니가 7월7일 오전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신경계 질환이 깊은 아들은 암투병 중인 어머니의 간병까지 겸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지만 차별적으로 비춘다. 드라마가 비춘 어떤 현실이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는 동안 드라마가 비추지 않는 어떤 현실은 편성표에서 사라진다. 집만 나서면 선택할 ‘의료’가 널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을 때 의료에 닿는 과정 자체가 ‘비상사태’인 사람들의 곤경과 막막함은 드라마 소재조차 되지 못한다. 의료뿐 아니라 ‘의료의 이미지’에서도 ‘대도시 밖’은 말간 공백이 된다. 증권투자하는방법
‘의료 대란 시대’에 정부 정책 개편을 결정하는 기준은 시청률보다 생명이어야 한다. 한번도 방영된 적 없는 논픽션 드라마를 한겨레가 시작했다. 의료취약지역 공공병원 메디컬 드라마 ‘영월 나이트’. 10부작이다.




개에게 물려 두 다리가 너덜너덜하게 찢겼던 홍승구세명전기 주식
(가명·55)는 입원실에 없었다.
7월3일 저녁 그는 “갑갑한” 병실을 나와 담배를 한갑 샀다. 응급실에서 상처를 봉합한 지 사흘밖에 안 된 날이었다.
“담배는 음식이니까.”
홍승구의 믿음은 확고했다. “술도 음식”이었다. 식사 대신 술·담배를 주식처럼 섭취하느라 그의 몸은 폐허가 돼가고 있었다. 간경화바다이야기기계
와 부종, 위정맥류 출혈, 토혈과 빈혈, 2형 당뇨 등이 서로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연쇄 발병했다.
“나를 만만하게 보는지.”
그는 “개가 싫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놈이 두 다리를 차례로 물더니 머리를 흔들며 살을 잡아 뜯었”다.
“1년에 한번씩은 물리니까.”
“세상이 만만하게 봐서맥스톡
개까지 만만하게 대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꿰맨 다리가 여전히 쓰리고 땅긴다”면서도 ‘염증의 적’인 담배를 의료진 몰래 피웠다. “피 토하고부턴 술은 안 마시고 담배도 사흘에 한갑으로 줄였다”며 홍승구가 왼손으로 재를 털었다.
“이젠 지나가는 개만 봐도 무섭지.”
그는 오른손을 잘 쓰지 못했다. “빙판에서 넘어지알라딘사이트
며 손가락이 꺾였는데” 제때 치료하지 않아 “꺾인 채로 굳었”다. 전국을 다니며 배관일을 하던 그는 “종이도 못 잡고 망치질도 못 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고 고향 영월로 돌아왔다.
“가난한 사람은 조용히 죽어”
홍승구는 영월의료원 ‘보건의료복지 통합지원체계 구축 사업’의 대상자였다. 의료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공공의료과가 보건소나 주민센터로부터 의뢰받았다. 지난해 영월(1966명)·평창(1470명)·정선(1838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중 287명이 진료비(연 입원비 50만원과 외래 진료당 5만원)와 간병비(보호자 없는 병실 30일), 입원 물품, 퇴원 뒤 지역사회 연계를 지원받았다. 입원 당일(7월1일) 외과 간호사가 “괜찮겠냐”고 홍승구에게 물었다.
“뭐, 어쩔 수 없죠.”
홍승구가 간호간병통합병동 입원에 동의했다. “하도 자주 와서 병원 오는 게 가장 무서운” 그는 ‘보호자 없는 병실’(요양보호사 상주·간병) 무료 입원 일수를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그는 실제로도 보호자가 없었다. “부모님이 모두 영월의료원에서 돌아가신 뒤 혼자 지냈”다. 그에겐 “우울증이 있었”고 “문병 올 사람은 없었”다. 경기도에 사는 형에게 입원을 알렸으나 “다녀갈 걸 기대하진 않았”다. “곧 끊을 예정”인 담배 연기를 뱉으며 홍승구가 그 말도 뱉었다.
“뭘 와요. 서로 힘들기만 하지.”
“가난한 사람은 조용히 죽었”(서영준 원장)다. 공공병원이 아니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목소리 없는” 환자들이 있었다. 병원과 의사를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단돈 몇만원이 없어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알기 어려웠다. ‘홍승구들’은 “우리 사회에 공공병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임현주 공공의료과장)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공공의료과 최은미 간호사가 7월7일 오전 보호자 없는 병실 201호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허리보조기를 차고 병상에 기대 있던 박효성(가명·39)이 “화장실 가셨다”며 반겼다.
그는 신경 기능계 질환이 깊었다. 요추·추간판 장애와 다발성 골절로 투병 중이었다. 등이 굽었고 다리를 곧게 펴지 못했다. 마흔이 안 된 나이였지만 허리 나이는 70대였다.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영양실조도 있었다.
“평범한 사무직이 꿈”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호두과자 공장에 취업해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다. 감자와 옥수수를 길러 내다 팔던 아버지는 희귀암인 천골척삭종을 앓았다. 서울 충무로에서 인쇄일을 하던 박효성은 영월로 돌아와 산불감시원·병해충관리원·물놀이안전요원 등 ‘계절 임시직’으로 일하며 아버지를 간병했다.
“심해져요? 많이 아파요?”
최은미가 붕대에 감긴 박효성의 발을 보며 물었다.
“그러게요, 잘 안 낫네요.”
지난해 연말 그는 발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산불감시원을 하다 동상에 걸린 발을 그가 “뜨거운 줄도 모르고 난로에 쪼였”다.
“우리 선생님.”
화장실을 다녀온 어머니가 최은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어머니의 병상은 박효성과 나란히 있었다. 자궁경부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와 아들이 동반 입원했다. 지난해엔 아버지까지 3명이 영월의료원의 지원을 받아 보호자 없는 병실에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아버지 기저귀 갈고 안마도 해드리고 혼자 있을 땐 불안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까지 한꺼번에 간병하려면” 거동이 힘든 그가 같이 있어야 했다. 감당할 시련만 허락한다는 신이 시련의 무게를 잘못 측정한 것 같았다. 아버지(현재 요양병원 입원)를 부축하던 박효성의 허리뼈가 부러졌다. 어머니에겐 두번째 암(대장암)까지 찾아왔다. 원주의 대학병원에서 항암을 시작하는 어머니를 돌보려면 그도 퇴원을 해야 했다. 본인의 재입원 여부는 “어머니 항암 비용이 얼마나 나오는지 본 뒤에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급비로 아버지 병원비와 어머니 항암비, 생활비를 우선 지출하느라 그의 병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굽은 등도 “집안 형편 때문에 금 간 뼈를 방치”한 탓이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낙담하다가도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그는 “소주 한잔”에 의지했다. ‘착한 주문’을 외웠다.
“다시 힘내보자. 내일도 잘해보자. 힘내보자. 잘해보자. 제발 힘을 내보자….”



한 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은 지방의료원 공공의료 사업 방향과도 무관치 않았다. 영월·평창·정선(영월권)의 건강보험료 하위 20% 납부자 비율(25.30%)은 전국 70개 중진료권(평균 21.80%) 가운데 해남권(30.34%), 정읍권(28.33%), 남원권(27.73%) 등에 이어 9번째로 높았다. 강원도 6개 중진료권 중에선 최고였다. 영월권의 만 65살 이상 인구도 33.39%(중진료권 평균 22.01%)로 도내에서 가장 많았다. 3.02%인 심한 장애 인구 비율(평균 2.28%)은 동해권(3.04%) 다음이었다. 가난과 장애와 고립된 삶은 긴밀하게 물려 있었다.
“오늘은 130도(무릎 운동 각도) 하셨어요?”
박효성의 병실과 대각선으로 마주한 202호에서 최은미가 운동 진도를 확인했다.
“그렇게까진 못 했어요. 하다 보면 늘겠지.”
김혜실(가명·81)은 어릴 때 오른쪽 다리를 다쳐 평생의 장애를 입었다. 몸의 중심이 왼쪽 다리로 쏠리면서 무릎이 손상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가 읍사무소를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고 읍사무소가 영월의료원에 의뢰했다. 지난 6월 말 의료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아픈데 계속 일해야 하니까.”
김혜실은 “고생했던 세월”을 떠올리면 눈이 빨개졌다. “나를 친정에 보내놓고 다른 여자 얻어 살던” 남편이 죽고 “50년을 혼자 살았는데” 병원에서도 혼자였다. “큰딸은 심근경색으로 먼저 보냈고, 둘째 딸은 뇌수술을 해서 못 오고, 아들은 건설 현장에서 허리를 다쳐서 못 왔”다.
“낫기만 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 땐 “무릎에 좋다는 일본 온천에 가보고 싶었”다. 온천엔 못 가도 “왼쪽 다리로 조금만 걸어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요즘따라 상동의 텅스텐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부쩍 생각났”다.



지난 7월3일 오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의료원 진폐병동에서 동원탄좌 광부 출신 김시호씨가 코에 산소줄을 낀 채 누워 있다. 사실상 사망할 때까지 지내는 진폐병동 특성상 입원실은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이문영 기자


“의료에 닿는 길 필요”
병원으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너무 가파른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산과 산을 넘어 병원까지 오는 과정이 험난해서, 누군가는 병을 치료해줄 의사가 관내에 없어서, 누군가는 진료비와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답답하고 막막했다. “과거엔 석탄을 운반하려면 운탄길이 필요했듯 지금 영월엔 의료에 가닿는 길이 필요”(임현주)했다. 길을 닦아 등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어떤 환자들은 병원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카르륵 컥컥.”
김시호(77)의 목에서 가래가 끓었다.
7월3일 오후. 영월의료원 진폐병동 481호에서 코에 산소줄을 낀 그가 성대를 긁어 가래를 밀어내렸다. ‘운탄’은 김시호의 일이었다. 그는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정선군 사북 동원탄좌(국내 최대 민영 탄광으로 2004년 10월 폐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그의 임무는 광차 운전이었다. 갓 캐낸 석탄 덩어리를 광차에 실어 갱 밖으로 날랐다. ‘875’(해발 높이로 불렀던 갱 이름)에서 ‘650’까지 오르내리며 석탄을 싣고, 나르고, 쏟길 하루 세차례 반복했다.
“안 본 사람은 절대 모르지.”
‘증산이 애국’인 시절 광부가 된 그는 ‘감산이 합리’로 돌변하던 해(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퇴직했다.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지켜보며 더는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 힘들었다. 1980년 사북항쟁 땐 “경찰에게 잡혀가 고문당하고 골병드는 게 무서워” 영월로 “피난”했다. 폐에 쌓인 탄재가 김시호의 호흡을 방해한 건 15년이 지나서였다. 2004년 진폐증을 진단받았다. 진폐증 환자들에게 입원(공적 지원)은 ‘좁은 문’이었다. 합병증이 입증돼야 입원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폐기종과 속발성 기관지확장증을 몸이 증명해준 2023년 그는 입원했다.
영월의료원 진폐병동은 김시호 입원 25년 전 문을 열었다. 120병상까지 찼던 병동엔 영월 마차탄광(1990년 폐광), 정선 함백탄광(1993년 폐광), 태백 장성탄광(지난해 폐광) 등 강원도 전역에서 옛 광부들이 찾아와 치료를 받았다. 한명씩 세상을 떠나 현재 54명이 남았다. 코로나 펜데믹을 통과하며 20여명이 사망했다. “코로나는 이겨내도 기저질환까진 이겨내진 못했”(진선주 간호과장)다.
“그땐 산업전사로 알아줬는데.”
영월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석탄을 캐고 부산에서 발병한 김시호는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얻어 다시 영월로 돌아왔다. 국가가 나서서 석탄 생산을 독려하고 “서민들은 모두 연탄으로 살았던” 시대를 지나 ‘기후악당’이 되고 “사람 취급 못 받게 된 지금” 그의 기침 속엔 한숨이 묻어 나왔다. 진폐증은 ‘악화 일로의 병’이었다. 그가 입원한 뒤에도 환자들은 계속 세상을 떠났고 김시호는 “언제든 내 차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니까.”
입원하면 사실상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서 사는 환자들에게 입원실은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김시호의 병상 주위는 삶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운동기구와 헤어드라이어, 탁상시계, 소형 선풍기, 우산 등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했고 벽엔 모양 다른 중절모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선반을 짜서 수납함을 올리고 옷가방도 정돈했다. 병상에 누운 그가 뒤척이며 말했다.
“죽으면 다 버릴 것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공공병원 구석구석엔 한 인생의 떨칠 수 없는 사연들이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흘 뒤 영월의료원 근처 카페에선 ‘그 사연들이 의료 격차에 쓸려가게 두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놓고 작은 토론이 벌어졌다.
※9회에선 불평등에 맞선 의료취약지 최전선의 고민과 시도들을 전합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